옛 성현들의 말씀에 땅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에도 이름 없는 것이 없다고 했듯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에게 이름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다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름은 자기를 나타내는 상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함부로 짓지 않고 이것저것 가리고 따져서 짓게 된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지식이 태어나면 부귀공명과 무병장수를 마음속으로 항상 기원한다. 그래서 자식이 잘 되게 하기 위한 일념으로 부모는 지식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한다. 이름은 자식의 몸과 영혼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좋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잘 되라는 축복이며, 나쁜 이름은 망하라는 욕이 된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또 자식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빚내기 위해 살아있는 동안 필생의 노력을 다하기도 한다. {예기}를 보면 군자는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이름을 고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이름이란 아버지가 지어준 것으로, 이름을 고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것으로 아들로서는 차마 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름을 빚내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은 이름의 중요성을 깨달아 좋은 이름을 짓고자 노력해 왔다. 그것을 체계적·종합적으로 연구한 것이 성명학이다. 성명학에 이름의 철리를 연구하여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이론이 성명철힉이다. 다시 말해 성명철학은 인간의 이름을 전문학적인 논리로써 인간과 우주와의 교감작용을 체계적으로 다룬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성명학은 우리 인간이 타고난 운명에 대하여 후천적으로 가공(加工)되는 성명의 유도력으로서 운명을 호전선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성명학은 엄필히 말해 부차적인 것, 즉 사주학이 주(主)라면 성명학은 관상학 등과 함께 부(副)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좋은 이름만 지으면 고관대작 또는 큰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반문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이런 반문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다. 인간의 행복이 반드시 큰 벼슬이나 큰 부자가 되어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고관대작이나 큰부자라 할지라도 그 환경에파란곡절이 많으면 불행이요, 의식주가 풍족하지 못하더라도 그 환경이 단란하면 행복인 것이다. 그리고 개명한 결과 일약 고관이나 부자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이는 본인의 선천명운에 관운과 재물운이 있기는 하나 성명유도력[그 개성의 선천명(사주팔자)의 정해진 범위 내에서 소장(消長)의 운화작용(運化作用)을 하는 것]이 막혀 있는 경우인데, 그 개명유도력으로써 막힌 것을 제거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택할 때에는 그 선천명운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조정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나라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주팔자, 관상과 함께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이름이 그 사람의 운세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믿어왔다. 명칭이 의미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볼 때,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작명이야말로 새로운 한 사람의 탄생을 뜻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인 작명관을 전적으로 무조건 맹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서양인이나 고유어로 이름을 지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의 성명은 대체로 성씨 한 자에 이름 두 자를 기본으로 한다. 성씨는 날 때부터 주어지는 씨족의 공통적인 이름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양에서는 생활을 중심으로 가족을 보기 때문에 여자가 혼인을 하면 성씨마저 그 가장(남편)의 것을 따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혈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성씨를 바꾸는 일은 없다. 타성입양이나 데릴사위가 되는 경우 성을 바꾸는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용인된 풍속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성을 제외한 두 글자의 선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글자 가운데 한 자는 그 종족에서의 세대 수를 표시하는 이른바 항렬자로서, 출생 이전부터 미리 정해져 있고 또 그 위치까지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고유의 이름자는 주어진 위치에 놓을 수 있는 한 글자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항렬자는 성씨와는 달리 다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려나 전통적으로 혈통을 존증해 온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떤 혈통의 어느 세대에 속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기 때문에 억지로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항렬자는 같은 씨족을 두고도 분파에 따라 다른 글자를 쓰는 것이 보통이나, 그 일족들끼리는 세대수를 짐작할 수 있다. 항렬자는 역학사상(易學思想)에 바탕한 오행(금, 복, 수, 화, 토) 순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원형이정(元亭利旬이나 오상(五常: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숫자를 쓰기도 하고, 干支(10干12支)를 배합하기도 한다. 그러면 항렬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항렬은 친족 집단 내에서의 계보상의 종적인 세대관계를 나타낸다. 종적인 세대에서 형제관계에 있을 때에 같은 항렬이라는 의미에서 동행(同行)이라 하고, 위로 아버지와 같은 세대에 있을 때 숙행(叔行), 조부와 같은 세대에 있을 때 조행(祖行), 또 아래로 아들과 같은 세대에 있을 때 질행(姪行), 손자와 같은 세대에 있을 때 손행(孫行)이라 한다.

전통적인 친족제도에서는 항렬을 특히 강조하고 각 세대마다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이름 두 글자(한 자, 즉 외자인 경우도 있다) 가운데 한 자를 공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상호간의 세대관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항렬은 고려말부터 사용하였는데, 흔히 항렬의 원칙이라 하면 '오행법'을 생각하게 되지만, 이것은 친족의식이 강화되고 대동항렬이 보편화될 무렵의 일이다. 그런데 일정한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사용범위도 제한적이고 일시적이었다. 여기에 항렬 제정에 나름의 원리를 도입하면서 종 더 발전된 형대로 나타나게 된다. 항렬 반복의 기준의 경우가 그것이다. 항렬 반복의 기준은 ① 이단위반복법(고령 신씨의 경우 고려 때 항렬자를 사용하였으나 1650년부터 水-木자를 반복하였댜), ② 삼단위반복법(한산 이씨의 경우 고려말 때 항렬자를 사용하였고 1700년대부터 火-水-木자를 반복하였다.), ③ 사단위반복법(면천 복씨의 경우 4대 간격으로 字意의 풀이가 같은 자끼리 모아서 항렬자를 만들었다(水水水水-土土土土-火火火火 등)), ④ 오단위반복법(오행법, 상생의 원리, 즉 金生水-水生木-木生火-火生土-土生金의 순서에 따라 항렬자를 정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성씨가 이를 따르고 있다. 종적으로 오행을 반복하면서 횡적으로 해당 오행자의 변이나 체가 들어있는 글자를 넣어서 이름을 짓도록 하는 방법이다), ⑤ 십단위반복법(天干의 순서에 따라 항렬자를 정하는 방법으로 구체적인 방법은 오행법과 같다. 한양 조씨 경파는 천간법을 사용하고, 연안 이씨 태사공파는 천간법을 사용하다가 32태부터 십이지지법을 사용하였다), ⑥ 십단위반복법(숫자,123…의 내용이 담긴 한자로써 항렬자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l0까지 끝나면 다시 1부터 시작하여 반복한다. 안동 권씨의 경우 그러했다), ⑦ 기타 반복법(오행의 원리를 따르되 뜻을 중복시키는 쌍오행법<雙五行法>, 인의예지신의 순서에 따르는 오상법<五常法>, 십이지지의 순서에 의거한 지지법<地支法> 등이 있다.

그러면 좋은 이름·나쁜 이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전해온 작명법은 주로 글자의 뜻을 치중한 것이 통례였다. 이후 학문이 발달됨에 따라 성명학에도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제갈공명 작명법을 비롯하여 역리법(易理法), 음양법, 파자작명법(破字作名法) 등 무수한 성명학이 있었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자의(字意) 선택식의 작명법 외에 88제지수(除之數)의 수리법, 주자 작명법, 황극책정수법(皇極策定數法) 등 각종의 작명법을 사용해 왔다. 금세기에 이르러 서양에서는 영자(英子)의 중복수와 영자 중에 머리글자(어두글자)와 끝글자(어미자)에 붙여서 길과 흉을 가져오는 글자발음식(字音式)을 논하는 성명학도 대두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작명법과 관련된 책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지만, 그것은 일본인들에게만 적합한 것이요, 언어.문화.풍습.국민성이 다른 우리 민족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운명적인 작명관을 떠나서도 부르기 좋고 뜻이 좋은 이름을 짓는 것은 필요하다. 성명학을 미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자기 자식의 이름을 함부로 짓지는 않을 것이다. 성명학을 토대로 작명할 때 기본적인 몇 가지 원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사주팔자를 보좌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사주팔자에 맞추어 이름을 보완시켜 주기 때문이다.

둘째, 이름은 부르기 쉽고 쓰기 쉬워야 한다. 이름은 성격학이라고 했듯이, 부르기 쉬운 이름은 부르기 쉬운 만큼 원만한 성격을 형성시켜 줄 수 있다. 이는 심리상태와도 연관이 있다. 그리고 쓰기가 쉬워야 한다는 것 역시 당사자나 타인 할 것 없이 쓰기 어려운 이름을 쓰게 되면 짜증이 나기 쉽고 이로 인해 성격도 까다로울 수 있다. 궁벽한 글자 역시 부담을 준다. 그러므로 쓰기 쉬운 이름은 원만한 성격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셋째, 음양 오행의 원칙과 맞추어야 한다. 이는 음양의 조화와 연관이 있다. 다음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오행과 음양 오행을 정하게 되는데, 이것은 천체 운행의 원리와 같은 입장에서 성명에 작용되는 기본이 되기 때문에 한평생 성명의 환경조성을 해준다. 그 다음에는 수리를 정하는데, 수리는 후천적인 운명의 시간적 변화에 운로를 좌지우지하는 요건이 된다. 마지막으로 원형이정의 4대 운격을 정한다.

넷째, 이름을 지을 때 쓸 수 있는 글자만 써야한다. 예를 들어 함부로 쓸 수 없는 글자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이 담긴 글자(한글도 마찬가지임), '일월성신(日月星辰)'이나 방향을 가리키는 '동서남북(東西南北, 東子는 장남에게만 쓰는 자이다)'의 글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십간 십이지(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子丑寅卵辰巳午未申酉戌亥)'나 '오행(釜木水火土)', 그리고 '충·효·인·의·예·지(忠·孝·仁·義·禮·智)'와 실체가 없는 형상 글자 '허·공·행·인·지(虛·空·行 ·人·芝)', 여자인 경우는 '정·숙·미·추·국·매·화·춘(貞·淑·美·秋·菊·梅·花·春) 이외 '복·덕·용·동·종·자·애·길·옥·순·사·구·만·선(福·德·龍·童·終·子·愛·吉·玉·順·四·九·萬·仙)'자 등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위에서 제시한 글자를 썼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성명학상으로 볼 때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반면 '두·정·병·수·철·환·승·상·훈(斗·正·秉·秀 또는 洙·哲·煥·承·相·勳) 자 등은 길한 글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소리가 부드럽고 분명하며(지나치게 딱딱한 소리는 인상까지 거칠게 심을 염려가 있다), 음성상징적 가치에 유의하고(지나치게 밝은 소리들만 모으면 가볍고 경망하게 들릴 우려가 있고, 지나치게 어두운 소리들만 모으면 둔중하고 침울하게 둘릴 염려가 있다. 성씨와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자로 쓸 경우 지나치게 뜻이 드러나는 것은 피해야 하며 (만복<萬福>, 천수<千壽>, 미향<美香> 등은 그 뜻이 강렬해 비천하게 들릴 염려가 있으므로 되도록 은근하고 중립적인 뜻을 모은 것이 좋다), 글자의 시각적 균형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작명할 때 윗대 조상의 이름자를 기휘(忌諱)하는 것은 당연하며, 특히 성현이나 왕의 이름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

성명학에 관계된 책자는 무수히 많을 뿐 아니라 그 이론도 작명가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주를 토대로 크게 음향(音響), 수리(數理), 오행(五行), 운격(連格) 등을 중심으로 작명하는 이도 있다.

작명을 하기 위해서는 사주학(四柱學)을 먼저 터득한 후, 이를 토대로 성명조직의 일곱가지, 즉 수리운로(數理運路), 음양배열, 음령오행(音靈五行), 자의(字意) , 선천명합국(先天命合局), 역리대상(易理大象), 오행역상(五行易象) 등을 알고, 제반 법칙인 성명의 수리 조직 방법, 81수의 영동력(靈動力), 성명의 수리 배치 및 작용법, 음령오행의 원리와 표출법, 음령오행의 육친과 육수법(六獸法), 음양과 음령오행 배열의 길흉관계, 이름자의 선택법 등을 숙지해야 되며, 이 밖에 음양오행, 획수, 격국, 호명법 등등의 세부사항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 종합 판단하는 것이다.

좋은 이름은 당사자에게는 원만한 성격 형성이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상대방에게도 호감을 줄 수 있다. 반면 나쁜 이름, 예컨대 고만두(高萬斗), 강도범(姜道範), 김 병균(金炳均), 안부자(安富子), 주길수(朱吉沫) 등은 오히려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이름이다. 또 이름, 이해님 등의 한글 이름도 좋은 이름이 아니다.

- 한국인의 작명법과 좋은 이름과 나쁜 이름에 대해 논한 글입니다. 이 자료는 송재용 평택대 겸임교수의 글입니다. -